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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기억에 기록을 더하다(7)
발바닥행동
16-06-0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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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기억에 기록을 더하다

                              (7)

 발행일 : 2016.5.30(월)

발행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발바닥, 기억에 기록을 더하다(7)

– 2003-2005년, 시설 안에서 신음하는 사람들

       
           
       

 

2003년, 충남 연기군 은혜사랑의집 사건

 

   2003년 9월과 11월, 우리는 경기도 양평의 성실정양원에 이어, 충남 연기군의 은혜사랑의집을 ‘치러’ 갔다. 역시나 닫힌 철문 뒤로 현장 기습조사를 온 것에 당황하는 운영자들. 수용인들 또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상시적인 폭행과 감금, 강제금식, 강제노역, 면회․전화․편지 등 외부와의 소통을 검열해 인권문제를 은폐해 온 것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갇혀 있으니 외부로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상황들, 방송통신 어떤 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상황. 130여명의 수용인들은 새벽4시에 일어나 하루 4번의 예배와 저녁8시 전체소등과 함께 잠자리에 들어야 했고, 매달 철야기도와 금식기도 등을 강요당했다.


  원장의 아들은 정신요양시설로 조건부등록을 했으며 진단서도 다 있어 꺼리길 것이 없다는 태도였는데, 진단서는 4일 동안 79명, 많게는 하루에 33명의 진단서가 똑같은 내용, 똑같은 필체로 작성되어 있었다. 수용인들은 의사를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는데 정신과의사의 진단서는 모두에게 발부되어 있었다.


  성실정양원과 은혜사랑의집은 각각 경기도 양평과 충남 연기군에 있었으나 마치 서로 벤치마킹을 한 것처럼 닮아 있었다. 기도원으로 출발해서 알콜중독이나 정신질환, 치매노인, 가족 간의 불화나 원한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정신요양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법 감금했다. 수용인중에 방장을 정하고 그를 앞세워 나머지 수용인들을 폭행해 공포를 조장하여 통제했다. 그곳은 고문과 학대로 얼룩진 사설감옥의 다름 아니었다.

 

면죄부 주는 사법부, 사업권 주는 행정부

 

  은혜사랑의집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는 검찰과 법원, 정부의 무감각하고 무책임한 인식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검찰은 은혜사랑의 집이 정신보건법에 의한 정신의료기관이 아니라며, 정신보건법 위반 혐의에 대해(40조 입원금지, 45조 행동제한의 금지) 혐의 없음 처분을 내린 것이다. 검찰의 말대로 은혜사랑의 집이 정신의료기관이 아니라서 처벌 못한다면, 정신의료기관이 아닌데도 130여명을 불법 감금하고 있는 것을 금지하는(43조 수용금지) 조항을 적용했어야 맞았다.

 

  그러나 검찰의 해괴한 논리는 130여명의 불법감금에 면죄부를 주었고, 결국 관리자 2명과 정신과의사 1명에 대해 구약식(벌금)처분으로 형사 처벌이 마무리 되었다. 이에 더해 충청남도는 형사처벌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은혜사랑의집에 사회복지법인 인가를 내주기까지 하였고, 이들은 대를 이어 지금도 사회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더러운 골방에 한 여성이 이불을 둘러쓴채 앉아있다.

[사진설명 : 2003년 충남 연기군에 위치한 은혜사랑의집 수용인의 징벌방. 인권활동가들이 나무 판넬로 막아진 곳을 열라고 하자, 창고라며 문을 막아섰다. 창고라도 확인하겠다는 한창의 실랑이 끝에 판넬을 뜯어내니 골방에 한 여성이 더러운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앉아있었고 악취가 진동했다. 시설 측에서는 다른 수용인과 싸워서 벌을 받는 중이라고 했다. 여성의 얼굴에는 멍자국이 선명하게 있었다.(사진제공 함께걸음 전진호기자) ]

       
           
       
       
           
       

2005년, 경기도 안양의 바울선교원 사건

 

   2004년 4월에는 서울 은평구의 영낙원에서 한 치매노인이 입소한지 이틀만에 갈비뼈가 6대가 부러지고, 쇄골이 부러지고 온몸에 각목으로 맞은 듯 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연이은 사건들이 미신고시설의 양성화정책이 낳을 재앙을 경고하고 있었음에도 복지부는 미신고시설 양성화를 부르짖으며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던 2004년 가을 즈음, 시설운영에 관한 교육을 받고 있다는 한 노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을 목사라고 소개한 노인은 시설 안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들에 의구심을 가지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찾아왔다. 자신은 신학을 전공하였는데(정식 인가받은 신학교는 아니었다) 교회를 새롭게 개척하거나, 기존 교회에 가기에는 나이가 많으므로 복지사업을 해 보라는 주변의 충고를 듣고 시설운영을 가르쳐 준다는 곳에서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그곳의 원장도 목사이며, 이곳을 거쳐 배워간 전도사, 목사 등이 여럿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배운다고 가서 함께 생활하다보니, 원장목사의 남편은 시설안의 청소녀를 성폭력한 혐의로 수감 중이었고, 거주인들간의 폭행과 성폭력이 심각한데다 생활도 열악하기 짝이 없는데 후원금과 후원물품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더 오랫동안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체장애인을 소개해 주었다. 당사자로서 그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렵게 만난 두 번째 제보자는 말하기를 꺼려했다. 사고 당한 후 지체장애를 갖게 된 자신이 그나마 살 수 있는 마지막 거처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시작되자 스스로 걷잡을 수 없었는지 그곳의 현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답사가 필요했다. 우리는 학생들 자원활동 할 시설을 찾는 중에 누가 추천해서 온 교사라고 소개한 후 현장을 둘러보았다. ㄷ자형 판자 집 마당에 아이가 놀고 있었다.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2005년 3월, 우리는 경기도 안양의 바울선교원에 장향숙의원실과 함께 ‘쳐’ 들어갔다. 알콜중독자와 정신장애인을 혼거수용하는 과정에서 일상적인 성폭행, 폭행 등이 일어나고 있었고 수용인들의 수급비와 후원금 갈취, 후원물품은 되팔아 이득을 챙기고 있었다. 수용인들의 의식주생활은 처참했으며, 40여명의 노인, 지체장애, 지적장애, 정신장애, 아이, 부부 등 복합수용소 형태였다. 원장은 교정시설에 설교를 하러 다녔고 법무부에서 받은 표창장을 자랑하기도 하였는데, 수용인중에는 교정시설을 출소한 몇몇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원장으로부터 용돈을 받고 시설의 업무들을 처리하고 수용인들을 통제하는 등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왜 바울선교원을 떠나지 않고 있는지 의아했는데, 원장은 수용인 중 정신장애가 있는 여성수용인을 부인이라며 결혼을 시키고(서로가 원한 혼인관계는 아니었다) 부부에게 개별 방을 주었고, 용돈과 담배, 외식 등의 특혜를 주고 수용인들에게 행사하는 폭행을 눈감아 주었다. 우리가 찾아가자 원장은 바로 시설을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수용인들 중 행동대장격인 사람을 시켜 우리를 협박하며 상황을 보고하게 했다. 우리 또한 물러나지 않고 수용인들의 건강 상황, 생활상태, 인권상황을 조사하며 원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버텼고, 밤이 되고 새벽이 되었다. 사무실에 있는 증거자료를 인멸하려는 원장의 속셈을 알기에 그대로 물러날 수가 없었다.

 

원인 모를 화재와 모든 것이 전소되며 날아간 증거물

 

   그렇게 새벽 4시쯤 되었을 때, 누군가 ‘불이야’라고 소리를 쳤다. 밤새 사무실을 지키던 우리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마당으로 튀어나왔다. 우리가 있던 사무실 옆방에서 불길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 불길은 금방 하늘로 솟구치면서 이글이글 타고 있었다. 천만 다행인 것은 그곳에 우리들 넷과 우리가 신변보호로 요청한 의경들 넷이 있었던 점이다. 우리 여덟은 각자가 흩어져 각 숙소에 있는 아무나 끌고 나와야 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각 방에 뛰어 들어가 들쳐 엎거나 이불위에 앉은 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끌어냈다. 일부는 스스로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 그 순간에 의경들이 용기 있게 함께 했다. 천장까지 불길이 옮겨 붙고, 중증 노인들이 있던 방에 이불을 해 집어 마지막으로 한 노인을 끌어냈을 때, 바울선교원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마치 타버린 종이장처럼 가볍게 폭삭 주저앉았다. 그제서야 비로서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울음소리와 비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불과 15분여만에 모든 것이 전소되었다.

 

   우리는 떨리는 손으로 그제서야 소방서와 경찰, 각자가 속한 단체 활동가들과 알고 있는 언론사 기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아직 3월이라 우리 모두는 떨고 있었고, 자다가 끌려 나온 사람들은 속옷 입은 그대로였다. 수용인들은 원장의 행동대장인 남성을 가리키며 그가 불을 낸 것이라고 울부짖었으나 확인할 길이 없었다. 뒤늦게 나타난 안양시 관계자들은 수용인들과 우리를 근처의 복지관으로 옮겼고,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뻔한 사태에 대해서 이렇다 할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우리는 복지관에서 그간의 상황을 보고하는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난민처럼 복지관 강당에 흩어져 있는 이들과 1:1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싶은지, 다른 시설을 원하는지, 자립을 원하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조사하여 안양시에 제출했다. 그러나 안양시는 3~4일 내에 수용인들을 가족들에게 돌려보내거나 다른 시설로 보내는 데에만 급급했다. 당사자들의 의견은 또 한번 묵살되었다.


   기습 방문하는 날 도망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원장은 화재가 나기 몇 달전에 화재보험을 들어 두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러 불을 냈다는 의견이 난무했지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자료가 전소되었지만 원장은 구속되었고 바울선교원은 사라졌다. 그러나 흩어진 40여명의 삶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 설명 : 무허가 판자집이었던 바울선교원은 불이 나자 15여분 만에 전소했다.]

[사진 설명 : 바울선교원 전체가 불타고 유일하게 남은 것은 원장실에 있던 금고였다. 경찰과 소방서에서는 금고 안을 확인하기 위하여 절단기로 뜯고 있다.]

       
           
       

[사진 설명 :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금고에는 수용인들의 신분증, 통장, 도장이 들어있었다. 원장은 수용인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매달 전액 출금하여 사용하였다.]

[사진 설명 : 통장내역을 확인해 보니, 수급비가 입금되면 바로 전액이 출금되었다.]

       
           
       
       
           
       

2005년, 강원도 인제군 심신수양원 사건

 

   바울선교원의 문제가 마무리도 되기 전인 2005년 3월 18일, 강원도 인제의 심신수양원에서 검찰에 고발인 조사 자격으로 출석한 박씨로부터 탈출을 도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박씨는 “여성생활인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시설장은 구속되었고, 납치, 폭행 및 감금과 성폭행 사실을 검찰에 알렸다는 이유로 나는 시설 내에 감금되었다”고 호소했다. 우리는 복지부, 강원도, 인제군에 연락하고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을 했다. 그러나 박씨는 경찰도 인제군도 믿지 않았다. 다행히 박씨는 두 번째 검찰 출석을 마치고 고맙다는 전화한통을 남긴 후 자기 갈 길을 갔다. 하지만 우리는 박씨가 말한 곳을 확인하러 가야 했다. 그때는 2005년 4월 8일이었다.

 

살려달라는 사람들을 다시 돌려보낸 인제경찰서

 

   우리는 이번에는 복지부 담당자에게 함께 가자고 했다. 현장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보자고 했다. 바울선교원의 화재 뿐 아니라 연일 이어진 인권침해로 궁지에 몰렸던 복지부는 연일 추가 지침을 지자체에 보내고 있었다. 분기별로 점검하고 인권침해 발견 시 조치하라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 현장에 가서 본다면 그러한 지침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확인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제군에서도 산길로 1시간을 달려 심신수양원에 우리가 갔을 때, 14명의 노인, 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원장은 구속되어 원장의 부인이 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원장부인은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귀가 아프도록 했다. 딱 봐도 그곳은 복지서비스를 받는 곳이 아니었다. 방마다 문은 밖에서 잠그도록 되어 있었고, 치매노인이 있는 방안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수용인들은 원장에게 폭행과 감금을 수없이 당했다고 호소했다. 원장부인은 치매노인과 정신질환자가 소리지르는 것에 마귀를 쫒아야 한다며 안수기도를 이유로 온몸을 구타했다고 말했다.


   제발 자신을 데리고 가 달라고 호소하던 조씨는 우리가 찾아오기 두달 전에도 탈출을 시도했으나 경찰에 의해 다시 붙잡혀 이곳에 갇히게 됐노라고 울분을 토했다. 조씨를 포함한 수용인 4명은 설명절을 쇠러 간다고 원장이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해 근처 가게에서 콜택시를 불러 타고 인제경찰서로 도망을 갔다. 경찰에게 “돌아가면 원장이 우리를 죽인다, 집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설측으로부터 도망친 사람이 있다는 연락을 받은 경찰은 오히려 “당신들이 시설에서 도망쳤고, 시설에 부채(미납한 입소비)가 있을지 모르니 그냥 집으로 보낼 수 없다”며 경찰서에 붙잡아 두었다가 경찰차에 태워 심신수양원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우리는 인제경찰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지만 결과는 인권교육을 받으라는 것이 전부였다. 인제군은 그제서야 8천 만원의 시설 양성화 지원금을 회수했고 심신수양원은 폐쇄되었다.

 

당신들은 악마야, 지옥불에 떨어질 거야

 

심신수양원 사건이 있은 후에 원장의 부인으로부터 두어 번의 전화가 왔었다. 요지는 니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와 가지고, 우리는 시설을 못하게 됐고 비어있던 심신수양원에 화재가 나서 전소됐으니, 니들은 악마라는 요지였다. 그래서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이라며 저주를 퍼부었다. 처음에는 점잖게 복지사업을 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의 최소 기준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였으나, 악마론에 꽂힌 원장부인은 다른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두 번째 전화가 왔을 때는 더 이상 설명하기가 어려워, 그동안 우리가 한 일로 지옥 불에 떨어진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으니 감내하겠다고 했더니 더욱 저주를 퍼부으며 전화를 끊었다. 피해자는 말이 없는데, 가해자는 늘 너무 말이 많았다.

       
           
       

[사진 설명 : 2005년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심신수양원. 복지부 미신고시설 담당자와 함께 제보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도착한 심신수양원 방안에서 치매노인이 우두꺼니 앉아 있었다. 방안과 이불에서는 말할 수 없는 악취가 났고, 사진속에 보이는 빨간색 플라스틱통이 주 원인이었다. 시설측은 할머니가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고 플라스틱통에 대소변을 보게했다.]

2005년 강원도 심신수양원의 방안. 치매노인이 우두커니 앉아있고 빨간 플라스틱 통은 변기대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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