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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기억에 기록을 더하다(12)
발바닥행동
16-09-21 23:42
조회수 :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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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기억에 기록을 더하다(12) 

발행일 : 2016.9.1(수)
발행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편집자주>
또 너무 오랫만에 보냅니다. 죄송ㅜㅜ 
지난 11호에는 S사회복지법인과의 첫번째 투쟁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그 후속 이야기는 이후에 계속 됩니다.
 
이번호와 다음호는 
발바닥행동 초창기에 열심히 활동했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운동" 이야기 입니다. 

<발바닥, 기억에 기록을 더하다> 전편은 발바닥 홈페이지에서 볼수 있습니다. 

       
           
   
       
           
   

똘끼의 선택,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뛰어들다 : 

2006년-2007년

       
           
   
발바닥 시작 6개월 만에, 옥순 소연 장추련으로 가다 

  2006년에 들어서자, 우리는 내부적으로 사변사에서 발바닥행동으로 조직명을 정하고, 회원을 모집하고, 재정과 사무실을 어떻게 할 것인지, 조직상과 조직문화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 전국을 돌며 조사했던 장애인시설의 인권상황실태조사 보고서의 막판 작업이 이어졌고, 우리는 시설조사를 하면서 우리가 가야할 탈시설의 길에 대한 명확한 정당성을 확인했기에 흥분하고 들떠 있었다. 어떻게 탈시설운동을 펼칠 수 있을지, 가능할지 망막했지만 그런 막연함 속에서도 실낱같은 탈시설의 열망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2006년의 첫 회의에서 옥순은 우리에게 놀라운 제안을 던졌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이하 ‘장추련’)에 자원활동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평소 옥순의 성격을 알기에, 자원활동이 진정한 자원활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옥순의 마음을 알면서도 허탈하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응시했다. 복잡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에관한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은 발바닥행동의 멤버들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활동할 때 주요한 과제로 활동했던 내용이었다. 누구 하나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부정할 수 없기에 뭐라 말 떼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발바닥행동의 입장에서는 사실 가당치도 않은 안건이었다. 조직이 탄생하면서 조직, 정책, 기획 등의 모든 제반 사항을 엮어내고 진행하면서 특히 재정 문제 등을 함께 풀어야 할 중요한 시기이지 않은가? 이제 막 조직을 만들어 시작해 놓고는 장추련으로 가겠다니, 그것도 자원활동가 라면서 상근활동을 하겠다니. 정말 가당치도 않았다. 그러나 더 가당치도 않았던 것은 옥순은 혼자 갈수 없다고 했다. 가서 손발이 맞춰 일할 사람이 필요하니, 누구한명 더 결의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원활동으로 파견기간은 법이 제정될 때 까지라 했다. 정말 어이없는 제안이었다. 이 어이없는 제안을 놓고 우리는 3개월을 토론했다. 

  결국 우리는 옥순의 똘끼에 말려, 그녀의 선택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3개월간의 길고도 지난한 의논을 통해 화백제도(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은 상임활동가 중심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에 관해서는 모두가 동의해야 집행할 수 있다)를 근거로 2명 상근자 배치를 결정했다. 옥순은 이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보면 기가 차고, 무 대포이고 무책임하고, 납득하기 어렵다. 그로 인해 발바닥 출범부터 약 2-3년 동안 발바닥의 <탈시설 자립생활운동>을 조직하고, 정책을 만들고, 빡쎈 투쟁을 만들어 내는데, 오롯이 혼자서 그 역할을 감당한 김정하에게 발바닥은 부채감이 많다.”고 늘 말하곤 했다. 
       
           
   
       
           
   

[사진출처 : 에이블뉴스 (2003.4.12.)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제1차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전체회의에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이 회의장을 가득 메우고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출처 : 에이블뉴스(2003.4.17.) 지난 1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출범식에서 상임공동대표들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하고 있다.]
       
           
   
       
           
   
발바닥은 활동가 파견단체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상근자 2명 배치 결정 배경을 발바닥은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장애로 인한 차별이 전 사회영역에서 무차별적으로 나타나고, 지속됐고, 비슷한 차별 양태가 반복되고 있는데다, 이동할 수 없어, 교육받지 못하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노동에 접근할 수 없는 차별의 순환 고리를 끊어내는 법제도의 절실함이 첫 번째 이유이다. 

  발바닥의 주요 의제인 ‘탈시설 자립생활’운동의 기초 토대로서 시설 안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와 차별 등을 다루는 등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는 이유가 상근자 배치를 작동시킨 요인이다. 모든 활동가들이 10여년 넘게 장애차별에 따른 권리옹호활동 경험이 있었고,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직접 실무자였던 정체성 자체가 결정 사유로 작용됐다. 
  
  그리고 사회 모든 영역의 차별을 다루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기에 오랜 활동 속에서 다진 정책 경험과 그 경험 안에서 차곡차곡 쌓인 차별 금지의 간절함이 이유가 되었다. 또한 인권의 기본 가치를 기반으로 ‘장애’로 인한 특별한 욕구에 맞는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라는 점이 발바닥 활동가들의 마음을 모았다.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은 온전히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고, 장애를 이유로 어떠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당연한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뜻을 모은 것이다. 여하튼 출범한 지 기껏해야 6개월여 된 조직이 장추련에 상근자를 2명이나 파견하기로 결정한 것은 옥순의 똘끼로 제안되긴 했지만, ‘투쟁의 현장에 발바닥행동이 간다’ 우리의 조직목적이 실현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 후부로터 ‘발바닥은 활동가 파견 단체냐’는 질문을 계속 받으며, 지금까지도 상임활동가 11명중 4명이 파견되어 활동 중이다.  
       
           
   
       
           
   

[사진출처 : 장추련 홈페이지(2006.12.14) 독립적인 장애인 차별시정기구 설치를 요구하는 임소연의 1인 시위]

[사진출처 : 함께걸음(2007.4.4) 장차법제정축하 문화제에서 박옥순활동가가 손을 흔들고 있다] 
       
           
   
       
           
   
공평한 의사결정 구조의 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차별금지>라는 ① 사람들의 열망 ② 조직 ③ 법안 ④ 투쟁 그리고 ⑤ 당시 정권 등 5박자가 제대로 마주쳤기에 제정됐다. 사실 이 모든 조건들을 만들어내고, 진심으로 5개의 박자가 마주치도록 끊임없이 매달리고 노력한 ‘사람들의 열망’이 가장 주효했다. 사람만이 희망인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2001년 열린네트워크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국토순례행진’을 펼쳤다. 이어서 차별 상담과 권리옹호 활동의 축적된 경험을 통해 2002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국회에 입법청원을 했다. 그리고 장애계가 하나로 묶여져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이하 장추련)>라는 긴 이름을 가진 단체가 2003년 4월에 공식 출범했다. 

  장추련의 1:1:1:1:1(장총:장총연:중증장애:장애여성:시민사회)의 조직 구성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일궈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명의 상임공동대표, 5명의 상임공동집행위원장, 25명의 상임집행위원회 등 치우침 없는 공평한 의사결정구조였다. 6개월 동안 지난한 조직 논쟁이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지루함을 주기도 했지만, 고단한 이 논의 과정이 있었기에 동등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낸 것으로 본다. 동등한 의사결정구조의 조직체계는 반장애, 반차별, 반인권, 반폭력의 실제적인 조직경험의 힘을 가질 수 있었으며, 조직 와해는커녕 조직 갈등 등을 성숙하게 풀어내는 중요한 기제로 작동됐다. 수많은 조직이 함께 하니, 사람도 많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러나 기초적인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끝내 탄탄한 기조를 유지하며, 수많은 상황들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출범 당시 54개 참여단체로 구성된 장추련은 2005년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공동투쟁단(이하 장차법 공투단) 결성과 아울러, 2007년 법 제정 때는 시민사회를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출범 초기에 비해 5배(297개 단체)로 확장하였다. 그 때까지도 조직체계가 유지되었고,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의 도도한 흐름을 일구었다. 

  특히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까지 장추련에서 실무를 집행한 사람들의 열망 가득한 노고는 크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당시 장애계는 상당한 분열과 통합, 또 다른 분열 등을 거듭하며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상황이었다. 따라서 조직체계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실무집행에 필요한 사무국을 어디에 두는 문제에 대해서도 긴장이 상당했다. 내 조직원이 사무국장이 아니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사무국장을 따로 두지 않은 것도 장애계의 분열 상황의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다. 결국 5개 단위의 활동가 2명씩 배치로 사무국을 만들었다. 사무국은 집행위원회의의 의결 사항에 대해 주 1회 미팅을 통해 의논하고, 역할분담을 하며, 그 결과를 집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법안을 발의한 이후에는 독립적인 사무국 체계를 갖추었다. 김광이 사무국장을 포함하여 실무 1인으로 진행했고, 법제정에 임박하여 사무국은 3명의 상근자와 자원활동가 등을 두었다. 돌이켜보면, 사무국 활동가들의 헌신과 열정이 조직 간의 갈등을 불식시키는데 일조했으며, 법 제정의 실제적 실무 체계를 만들어 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차별, 생명, 존중, 행복, 차이, 민주주의, 인권, 자유, 평등, 권리구제, 권리옹호 등 인권의 가치를 나타내는 수많은 단어들과 싸우고, 상호 논쟁하고, 토라지고,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과정에서 법안을 만들고,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며, 실무를 집행하는 전체 조직적인 힘은 공평한 조직체계에서 출발했고,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장추련은 이런 조직체계를 통해 인권의 가치를 미력하나마 온 힘으로 실천하는 노력을 했기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은 그 전에도, 2016년 현재에도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중한 경험을 토대로 장애계가 또 한 번 민주적인 조직체계를 통해 ‘탈시설 자립생활 운동’이라는 우리의 열망을 일궈낼 날을 꿈꾸고 있다. 

법안 제정사, 역학관계 그리고 투쟁사는 다음호에~~~ 

       
           
   
       
           
   

[사진출처 : 에이블뉴스 (2005)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한나라당사 앞 집회. 왼쪽으로부터 문애린, 박김영희, 정영란, 양영희활동가]

[사진출처 : 함께걸음(2005)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삭발투쟁. 왼쪽으로부터 박김영희, 최용기, 김광이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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