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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9-01 00:16
바보 이반, 바보 노현
 글쓴이 : 박숙경
조회 : 7,293  
바보 이반, 바보 노현

‘사람은 버리되 정책은 지키자고?’


 

박숙경(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시민교육전담교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상황이 온 나라를 강타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그 시점을 두고 왈가왈부가 있을 만큼 절묘한 시점에 터져 나온 곽노현 사건. 사건을 접한 국민들이 느꼈을 충격과 배신감을 십분 이해한다. 오죽하면 잘 아는 지인들조차 절대 곽노현을 옹호하지 말라고 내게 충고했을까.‘사람은 버리되 정책은 지키자!’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인정이나 의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책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토록 쉽게 사람을 평가하고, 그래서 물건처럼 버리고, 버림받는 상황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되는 사회에서 인간을 위한 정책이 구현될 리 만무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곽노현이 걸어왔던 길을 옆에서 함께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나는 인간을 위한 정책을 지키기 위해서 먼저 그 정책을 상징하는 한 인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의리 이전에, 인정 이전에 그와 함께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문제는 곽노현 교육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손쉬운 재단과 인간을 그저 도구로만 바라보는 대한민국,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니 우리의 문제다.


자살직전까지 내몰린 박명기후보의 상황이 염려스러워 ‘선의’로 2억원을 주었다는 곽노현교육감의 주장에 대한 우리사회의 냉소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선의로 주기엔 액수가 너무 크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설사 선의라 하더라도 불법이고 공인으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한 편 삼성과 검찰을 상대로 ‘법치주의의 전사’로서 질긴 싸움을 벌여온 그의 강한 이미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나는 곽노현 교육감의 ‘선의’를 믿는다.

여야를 막론한 사퇴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미련스럽게 버티는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강한 포청천 같은 이미지로 알려진 그는 한없이 유약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다. 또 진보 법학자로 외길을 걸어온 곽노현은 진실에 기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곽노현은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 버티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그가 교육감이 되기 전 그와 꽤 오래 장애인인권운동을 함께 해왔다. 그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장애인,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시설장애인을 위한 인권운동현장을 지키며 탈시설정책위원회를 이끌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고,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아 명예를 얻기도 힘든 그 일을, 장애인단체들에서 조차 외면 받던 그 일을, 그 많은 사회복지전공교수들이 외면하던 그 일을 그는 선뜻 맡아 성실하고 열정적이고 유쾌하게 이끌어왔던 사람이었다.

 

그는 가끔 돈키호테와 같은 돌발 행동을 하곤 했다.

2004년쯤 캐나다에 안식년을 가 있던 곽노현교수는 이메일을 보내 수차례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위한 운동을 함께 할 사람들을 찾아 연결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법학교수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외에서 국내 관련 단체를 찾아 함께 운동을 하자고 제안하는 일 역시 실은 돈키호테 같은 일이다. 운동현장에서 학자와 전문가는 대개 활동가들의 섭외와 호소에 의해 결합하곤 한다. 귀국 이후 그는 단체들로 이뤄진 ‘시설장애인의 인권확보를 위한 연대단체’에 가입의사를 밝혀왔다. 당시 개인이 가입한 예도 없었고 개인이 가입을 주장한 적도 없었다. 난감해하는 활동가들에게 그는 ‘‘단체’들로만 연대를 꾸린 것은 잘못이라며 ‘개인’자격으로 가입하겠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의 주장은 이치에 맞았다. 당시 통념과 관념에 익숙해 있는 건 오히려 나를 포함한 활동가들이었다.

 

경기고, 서울대, 펜실베니아 대학을 거친 엘리트, 먹고 살만한 그는 그렇게 동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외길을 걷곤 했다. 그래서 세상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면서도 명백한 잘못이라고 지탄하는 이 일의 근본에 나는 박명기후보에 대한 곽노현 교육감의 ‘따뜻한 가슴과 연민,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어려워진 상대후보의 상황을 외면하지 못하는 인간적 결단’이 있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친구를 돕기 위해 어려움에 처한 강경선교수 역시 그런 사람이다.

 

이번 사건의 이면에 나도 알지 못하는 더 구체적인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 진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같은 꿈을 꾸고, 또 경쟁했던 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안쓰러움이 그 결단의 본질이었으리라 나는 믿는다. ‘금전을 대가로 한 후보 단일화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그는 일관되게 피력해왔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이 ‘사람을 버리고 정책과 정치를 구하자’는 구호를 외쳐도, 정치와 정책의 이면과 궁극적인 목표가 ‘사람’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정치적 판단과 위법성 논쟁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선의’를 주장하는 곽노현교육감의 주장을 냉소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적어도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흘리며 여론재판을 주도하는 검찰을 경계하고 차분히 법 앞의 평등이 지켜지고, 공정한 수사가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 .

 

ps. 아직 해보지 못한 숙제

 

법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그 무엇도 한 인간의 진실과 진심을 짓밟을 만큼 절대적이지 않다. 그 진실을 그 진심을 그대로 믿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번쯤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한 인간에게만 속한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정책에만 속한 문제가 아니라, 내가, 당신이, 세상을,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문제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은 아직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숙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톨스토이 소설 ‘바보 이반’의 주인공 이반은 통념을 깬 원칙에 충실한 행동을 통해 세상을 바꾸곤 한다. 이 사건을 대하면서 ‘바보 이반, 바보 노현’이 떠오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우리 스스로 기존 프레임과 상식에 너무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조용히 따져 보았으면 한다

... 11-09-0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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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고맙습니다.
이번 문제가 곽노현 교육감을 모르는 3자의 입장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여태껏 불신을 자초하는 행동만을 보여왔던 검찰이 여론 재판을 위해 슬슬 흘리는 말과
이를 확대재생산 하는 언론의 글을 그대로 믿는 것도 문제죠...
한 개인의 말과 행동에 대한 판단은 결국 그 사람을 향한 믿음과 신뢰로부터 시작한다고 봅니다.
무죄추정 원칙에 입각해서 곽노현 입장도 선입견 없이 들어주고, 판단은 재판 결과 나온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침이슬 11-09-0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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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진실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한쪽 아무개의 말을 사실인양 받아 적는 언론과 그것을 액면 그대로 믿고 확대해석하려는 모두에게 판단 중지 할 것을 요청합니다. 더이상 자극적인 제목에 말초신경을 세우지 말고 자신의 관점을, 행동을, 관계를 반성하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것인지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박숙경 11-09-0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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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침이슬님의 의견에 정말로 동의합니다. 어쩌면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우리 시민이 한층 성숙해나가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겠다 그런 기대를 해봅니다.
힘내세요 11-09-02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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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감사합니다.. 이글을 통해 교육감님을 한발짝 좀더 알게 된 계기가 되어서 너무 기쁩니다,,
이상명 11-09-0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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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혜영 11-09-0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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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잘 읽었어요^^, 상엽선배 덕분에 알게 된 글을 따라 발바닥에도 첨 와봤네요.^^
문백현 11-09-0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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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오래간만입니다.....^^
저도 발다닥 홈페이지는 첨인거 같은데..... 링크타고 들어와서 좋은글 읽고 갑니다.....^^
유진선 11-09-0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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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합니다~
이계연 11-09-0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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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노현님의 진실을 믿습니다.
불의가 세상을 이긴 적이 없기 때문에 일시적인 쓰나미를 잘 견뎌서
승리하실 것을 믿습니다.
남용현 11-09-0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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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경 선생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곽 교육감님과는 장애인인권 관련하여 스터디모임 두세번 정도 같이 해본 경험을 제외하면
그분과 같이 일한 경험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견지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어떤지 멀리서나마 지켜보았기에 박샘의 글이 진솔하게 와닿습니다...
더우기 박샘이 어떤 분인지를 감히 알기에 이 글이 제게 위로가 아닌 힘이 됩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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