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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생활이야기
 
작성일 : 13-04-02 13:01
네번째 이야기_자립생활이라는 다른풍경과의 만남.
 글쓴이 : 발바닥행동
조회 : 1,981  
자립생활이라는, 다른 풍경과의 만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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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늦은 오후, 한명수(46, 남) 형의 집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라면을 끓이겠다고 하자, 형은 고추장 통을 가리키며 형이 별미로 즐겨 먹는 고추장라면 만들기 레시피를 나에게 전수해주었다. 그렇게 고추장라면 물이 끓는 동안, 형은 형이 그린 그림 몇 점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화분에 담긴 꽃 그림이 많았다. 그 중 산과 논밭이 그려져 있는 그림 한 점이 눈에 띄었다.


한명수 형은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아동병원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네 살 때 아동병원에서 시설로 거처가 옮겨진 후, 그렇게 40년을 시설에서 지냈다. 형은 시설에 있는 동안 먹을 것에 드는 돈을 아껴가며 목돈을 마련했고, 시설에서 나와 10평짜리 전셋집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여름, 구파발역 근처의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자립생활을 시작한 지 그렇게 3년이 지났다.

한명수 씨. ⓒ고은경

자립생활을 시작하며

먼저 형에게 시설에서 나오게 된 계기에 대해 물었다. 시설생활의 어떤 점들이 형에게 불편으로 다가왔는지 듣고 싶었다.

“밥 먹을 때, 보육사가 ‘이거 먹어라, 이거 먹어라’ 하는 거”

“물론, 건강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데 아마 누구라도 옆에서 밥 먹는데 이거 먹어라, 이거 먹어라 하면 밥맛이 안 생길 거야. 나 같은 경우는 밥을 스스로 먹을 수 있는데 일일이 반찬을 이거 먹어라 하는 것이 힘들었어. 나도 내가 먹고 싶은 거, 내 건강 챙기며 먹을 수 있어.”

“또, 9시만 되면 무조건 자야 하는 거. 가끔 늦게 자고 싶을 때도 있고, 밤늦게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도 있잖아. 그런데 9시만 되면 시설관리 때문에 불 끄고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이런 게 숨 막혀.”


“그리고 마음대로 어디를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여기도 다닐 수 있고, 저기도 다닐 수 있고.”

한명수 형은 자립생활을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생활’을 꿈꿨다고 말했다. 형이 말하는 ‘마음대로 먹는 것’은 아마도 자신이 밥을 먹는 것이 누군가의 일이 되어 그 시선 속에서 밥을 무겁게 뜨지 않아도 되고, 또 자신이 스스로 먹을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의 자유‘에 대해 말하는 듯했다.

또 ‘마음대로 다닌다는 것’은 세계일주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라기보다 ‘어디든 오갈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들렸다. 먹을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오갈 수 있다 라는 가능성을 시설의 규칙에 의해 제한받고 싶지 않다는 강한 바람이 느껴졌다. 시설에서 관리, 유지를 위해 절대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규칙들이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며 살고 싶은 형에게는 큰 불편으로 다가온 듯했다.

자립생활 3년 동안

형은 자립생활을 시작하고 2년을 10평 남짓한 전셋집에서 지냈다. 주로 혼자 지내다가 지금은 아파트로 옮겨서 살고 있었다. 형은 가끔 시설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언제 그런 생각이 드는지, 형에게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는 동안 힘들었던 점에 대해 물어보았다.


“길… 그리고 밥”

한명수 형이 말하는 자립생활을 시작하고 힘들었던 것은 이동과 식사였다. 형은 휠체어를 타고 거리로 나왔는데 길을 헤매게 되어 어디서 어디로, 가야 할지가 모르게 되었을 때와 밥을 혼자서 해결하기가 힘들어 끼니를 걸러야 할 때 불안이 찾아온다고 했다.


“처음에 시설에서 나와서 우선은 지하철 타는 게 겁이 많이 났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사람은 많고 표지판은 이해하기 힘들었고.”


“성신여대 쪽에 갈 일이 있어서 길을 나섰다가 지하철을 잘못 갈아탄 적이 있는데 깜깜해지더라고.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가 어디인가? 길을 어떻게 찾아가야 할까? 그러다가 가끔 밖에서 내가 길을 완전히 잃거나 해서 다치게 되면 돌봐줄 사람이 없는데 하는 불안감이 밀려오기도 해.”


그런 한편 지하철을 몇 번 타보게 되고 이제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한번은 혼자 혜화역에 내렸는데 기적 같았어. 내가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수 있구나 하고.”

“그래도 지금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어. 길, 여기저기 다닐 수가 있어.”

이어 형에게 지금 지하철로 이동할 때나 도로로 이동할 때 필요한 것들, 바뀌었으면 좋겠는 것들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좀 더 보기 쉬운 표지판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지하철 역사 내에 지하철 노선도가 없는 곳도 있고, 엘리베이터 옆에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표시도 생겼으면 좋겠어.”

“승강장과 지하철의 틈새가 넓은 곳은 전동휠체어 바퀴가 틈새에 빠져. 어느 역이 틈새가 넓은지 아닌지 알 수도 없고. 틈새가 넓은 곳은 휠체어가 잘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해.”

“문이 열고 닫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타려고 하다가 머뭇거리면 못 타게 되는 때도 있었어.”

“승강장에서 음성이 너무 빠르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

“또 가끔 도보로 휠체어 이동하다가 도보 경사로에 차가 주차되어 있어서 휠체어가 도보로 못 가게 되면 화가 많이 나.”

한편, 밥 문제에 있어서 시설에서 밥을 먹을 때 보육사의 간섭이 싫었다고 한다면, 자립을 시작한 몇 개월 동안은 경제적인 문제와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외로움에 직면했다고 한다.

“방세 20만 원, 전기 4만 원, 물세 1만 원, 엘리베이터 1만 원, 가스비 4만 원, 핸드폰비 2만 원. 이렇게 낼 돈 빼면 식비는 한 달에 10만 원 남아. 그러면 이거 가지고 아침, 저녁은 굶고 점심에 나가서 사 먹었지.”

“처음엔 빵, 우유 같은 걸 사 먹었다가 나중에는 음식점에 가서 혼자 먹었어. 외롭지. 가게에서 안 받아줄 때도 있고. 그럼 화도 많이 나고.”

“그러다가 센터에 가서 함께 밥을 먹기도 했어. 혼자 밥 먹는 것보다 센터 가서 함께 밥 먹는 게 좋았어.”

형은 혼자 밥 먹는 외로움은 센터에서 밥을 함께 먹으면서 나아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형은 덧붙여 자립생활을 하게 되면 자립생활센터와의 관계를 잘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러 다른 자립생활하는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고, 생활의 어려움을 서로 위로할 수도 있어서 좋다고 했다. 특히 같은 시설에서 먼저 자립을 한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로부터 일주일에 두 번 집 안 청소를 해주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소개받기도 하고, 가끔 만나서 안부도 함께하고, 자립생활에 필요한 정보들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자립을 시작한 지 3년째이니까 그동안의 겨울나기는 어땠나 물어봤다.

“이거 전기장판, 이거 하나로 주로 겨울을 났지. 가스비는 많이 나오니까 전기장판을 이용해. 센터에서 말해줘서 전기료 아낄 수 있는 방법도 찾고 그랬어.”

한편, 한명수 형은 뇌병변장애가 있고, 집안 살림을 하는 데 불편을 겪고 있었지만 보건복지부 기준으로는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밥을 먹지 않고 돈을 모아두어 개인 돈으로 일주일에 두 번 방을 청소해주는 청소업체에 내고 있었다. 형에게 자립생활을 하면서 활동보조인이 어떤 일에 필요한지에 대해 물었다.

“활동보조인이 있어야 이동을 할 수 있어. 특히 멀리 어디를 다녀오려고 하면 활동보조인이 없이는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어. 또 지하철 이용할 때도 어디서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면 좋겠고. 또 지금은 사비를 지출하면서 청소도우미를 불러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혼자 할 수가 없어. 이런 것들을 활동보조인이 해줬으면 좋겠지.“

움직이는 풍경


형은 자립하고 나서 아는 동생과 함께 살았던 경험이 있었다. 시설이 아닌 곳에서 우연히 만난 이와 함께 살아보니 어땠냐고 물었다.

“함께 살면서 좋았던 것은 그 동생이 컴퓨터를 다룰 수 있어서 컴퓨터에 문제가 있을 때 돌봐줬던 것이 있는데, 또 그 친구가 전기세나 물세 등을 함께 내지는 않아서 좀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었어. 그래도 그 친구가 아파트 구해서 잘 나갔지.”


형은 함께 살 때 딱히 좋은 것 같진 않았다고 속삭이며 말했다. 서로 할 수 있는 것이 다르고, 도우며 지낼 수 있어 좋지만, 서로의 생활에 간섭이 너무 심하거나 경제적으로 부담되는 것은 힘든 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지금 형은 한 번 더 아는 형과도 함께 살고 있었다. 함께 살아보는 것. 한번 더 형에게 자립으로 함께 사는 실험이 계속되고 있었다.

집에 놓인 그림을 보며 형에게 오직 한 그림이 꽃이 아닌 산과 나무, 논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이 그림은 언제, 어떻게 그려졌는지 물어보았다.

“그건 시설에 나와서 그린 거야. 시설에 있을 때는 주로 꽃을 그렸어. 꽃병에 있는 꽃을 보고 그림에 담고 싶었지. 꽃의 아름다움. 나와서는 풍경. 가을 풍경. 들판. 지금은 저 들판에 내 마음을 담아.”


인터뷰를 하며 형이 ‘시설로 돌아갈래’라고 말했을 때, 그때가 명수 형이 시설 바깥에서의 자립의 필요성을 체험한 때가 아닌가 싶었다. 형에게서 ‘자립’생활이라는 것은 혼자 사는 독립이 아니라 시설에서와 다르게 밥을 함께 먹고, 이동할 수 있게 하고, 다르게 친구를 만들어 가는 기술들을 발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른 기술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자기 삶이 될 수 있다면, 그 시도들이라면 한 번 해볼 만한 것들이 아닐까! 그때 다가오는 풍경들을 우리는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형에게 자립하고자 하는 시설에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어느 정도 생활할 수 있는 돈을 조금 가지고 나오면 좋겠어.”

“나와서 길을 많이 다녀보면 좋겠고.”

“센터를 통해서 자립생활에 대해 많이 상의하고”

인터뷰 동안 밥을 함께 먹고, 서로의 자립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형이 그린 그림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인터뷰 후기

내가 지내고 있는 공간에서 한 번, 형 집에서 한 번 형을 만났다. 형과 만날 때마다 서로의 자립생활의 어려운 점들을 함께 이야기했고 형의 그림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형 집에서 형의 그림들을 보며 형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형은 자기 안에 담긴 세계를 꽃과 논밭에 담아 표현해내고 있었다. 하나의 세계를 그려내고자 하는 형에게 시설 안의 규율은 얼마나 자신을 옭아매는 것처럼 여겨졌을까 형의 고통이 전해졌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는 동안 부딪혔던 생활을 들으면서는 문득 나의 생활들이 겹쳐 떠올랐다. 형이 시설에서 나와 자립을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태어나면서 쭉 자립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명수 형과 나, 또 우리는 어떻게 밥을 함께 먹고 있나? 명수 형과 나 또 우리는 어떻게 밥값을 마련하나? 어떻게 살 집을 마련할 돈을 마련해야 하나? 어떻게 낯선 이와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나?
뇌병변장애인이 활동보조인 없이 시설에서 나와 밥을 함께 먹고, 그림을 그리고, 이동할 수 있는 자유를 지니며 산다는 것은 삶의 불안과 함께 하루 한 끼 식사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은 여전히 자립생활 중이다. 형이 너무 배고프지 않게, 외롭지 않게, 이곳저곳을 움직일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글 노규호 수유너머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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